요즘 AI Community Bloom노정석님 팟캐스트를 자주 보고 있다. AI 업계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걱정하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 들을 수 있어서 Threads나 X의 짧은 의견과는 다른 밀도로 다가온다.

그중 이 영상을 보다가, AI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이 단순히 “로봇이 무서워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에 대한 거부감도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불안이 있다. 내가 쌓아온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도 나를 지켜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여러 세션이 있었지만, 토스 개발자 김주언 님이 AGI 시대의 개인 생존 전략을 화두로 던진 세션이 특히 오래 남았다.

AI를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

AI에 대한 공포는 종종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말로 요약된다. 하지만 개발자 커뮤니티를 보면, 일자리 이야기보다 더 깊은 불안이 있다.

  • 정체성의 위협: “나는 코딩을 잘하는 사람이다”라는 자기 서사가 흔들린다.
  • 통제권 상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시스템이 점점 더 많은 결정을 내린다.
  • 불확실성: AGI가 온다는 말은 “언제”가 아니라 “그러면 나는 뭐가 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나에게는 지금 이 시기가 여태까지 개발하던 어느 순간보다 더 즐겁다. 나는 예전부터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개발은 그 수단이었기에 코딩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뛰어넘고 서비스를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어서 지금이 너무 좋다. 하지만 AI 시대가 열리면서 예전에는 개발자로서 생각했던 구현과 장인정신의 코드 작성이 가치였다면, 이제는 그게 흔해지면서 내가 개발자라고 믿었던 근거가 사라지고 있다.

지금 내가 두려운 것은 내가 쌓아온 것 — 개발/코딩 실력, 구현에 대한 자부심 — 이 더 이상 희소한 능력이 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코딩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의 모든 실력이 아님에도 말이다.

확정된 AGI

AGI에 대한 여러 정의가 있지만, ‘보편적 지식’은 현재 프론티어 모델을 보면 이미 문턱에 다다른 것 같다. Demis Hassabis의 정의 — 인류 최고 수준의 지성을 AI가 뛰어넘는 시점 — 은 아직 더 남았다고 본다.

어차피 나도 AGI의 시대는 무조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핵무기 경쟁처럼, 국가와 기업은 생존을 위해 AGI 혹은 그 이상을 만들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기정사실화된 미래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AI를 규제해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가치를 만드는 세 축

영상을 계기로 정리해 보니, 개인이 가치를 만드는 방식은 기능, 권력, 소유 세 축으로 나뉘는 것 같다. 각 축을 어떻게 보고 대응할지가 문제다.

기능 — 흔해진 능력

기능이란 “뭔가를 할 줄 아는 능력”이다. 코딩, 분석, 디자인, 글쓰기. 나는 오래도록 개발자의 가치를 여기에 두었다. 어떤 언어를 쓸 수 있는지, 어떤 아키텍처를 짤 수 있는지, 얼마나 빨리 구현하는지.

AI는 이 축 자체를 흔하게 만들고 있다. 기능은 더 이상 자산이 아니라 비용을 낮춰주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1분기 회고에서 “AI와 코딩 능력으로 경쟁하지 마라”고 썼는데, 지금 생각하면 경쟁하지 말라는 수준을 넘어 기능만으로는 성을 쌓을 수 없다는 쪽에 더 가깝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지금 개발이 예전보다 훨씬 즐겁다. 코딩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뛰어넘고 서비스를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바로 그 과정 — 코딩, 구현, 장인정신 — 이 예전에는 나를 개발자로 만든 것이었고, 지금은 AI가 더 잘하는 영역이 되었다. 즐거움과 불안이 같은 원인에서 나온다.

권력 — 당장은 내 축이 아니다

권력은 조직, 자본, 제도를 통해 가치를 배분하는 축이다. AI가 기능을 대체해도 권력 구조는 단기간에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이 이 축에 올라서는 건 원래 어렵고, 지금 내가 고민하는 문제와도 거리가 있다. 솔직히 여기서 답을 찾기보다는, 기능과 소유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가 더 급한 질문이다.

소유 — 대체가 어려운 축

세 축 중 AI 시대에 대체가 어려운 것은 소유다. 부동산이나 주식만을 뜻하지 않는다.

  • 브랜드: 타인의 마음속 공간을 차지하는 것
  • 네트워크: 신뢰 관계를 쌓은 것
  • 커뮤니티: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합

나는 기능으로 자신을 정의한 사람과, 이미 무언가를 소유한 사람이 AI를 다르게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명품은 AI 시대에도 명품으로 남고, 건물은 여전히 건물을 소유하게 해준다.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이 영역이다. 가장 쉬운 예로, AI는 아직 고객을 모으지 못한다. 수많은 콜드메일은 결국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준다. 진정성을 통해 쌓인 신뢰가, AI 시대의 소유에 가장 가깝다고 느낀다.

개발자에게도 마찬가지다. AI가 구현을 대신해도, “이 사람의 판단을 믿는다”, **“이 사람이 만든 것을 쓰고 싶다”**는 건 AI가 대신해 주지 못한다. 기술 스택을 쌓는 것과 신뢰를 쌓는 것은 다른 일이다.

기능인에서 소유자로

AI 시대의 변화나에게 해당하는 것
기능희소성 소멸, 비용화코딩, 구현 — 익숙했던 자기 서사
권력구조적 변화는 느림당장은 해당 없음
소유희소성 증가신뢰, 관계, 진정성

앞에서 쓴 두려움의 핵심은 **“내가 개발자라고 믿었던 근거가 흔해진다”**는 것이다. 나는 기능 축 위에서 성장해 왔고, 그 축이 지금 약해지고 있으니까.

다만 해법도 같은 프레임 안에 있다. 기능인에서 소유자로 옮기는 것이다. AGI를 막을 수 없다면, 신뢰처럼 대체하기 어려운 것을 키우는 쪽이 남는 선택지다.

  • “나는 Spring을 잘 다룬다” → “나는 이 문제를 왜 이렇게 풀기로 했는지 설명할 수 있다”
  • “나는 코드를 많이 썼다” → “나와 함께 일한 사람이 나를 다시 불러준다”
  • “나는 기술 블로그를 쓴다” → “내 글을 읽고 같은 고민을 나눈 사람이 있다”

2분기 회고에서 썼듯, AI에게 구현을 맡기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지금도 만드는 게 즐겁고, AI 덕분에 그 즐거움이 더 커졌다. 문제는 만든 것 너머에, 그 판단을 믿을 수 있는가다.

1분기 회고에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지에 집중하라”고 썼는데, 그때는 “가치”를 추상적으로 말했다. 이번에 보니 가치를 만드는 축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였다. 기능은 혼자 연습하면 늘었다. 소유 — 특히 신뢰 — 는 혼자서는 안 된다. AI가 How를 대체할수록, Who를 믿을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다.

마치며

AI를 두려워하는 것은 비합리적이지 않다. 특히 기능으로 자신을 정의해 온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AGI는 언젠가 올 것이고, 그 전후로 기능 축은 더 약해질 것이다.

AI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은 AI보다 더 잘 코딩하는 것이 아니다. 신뢰를 소유하는 것이다. 즐겁게 만드는 시대와, 신뢰를 쌓아야 하는 시대가 동시에 온 것 같다.

아직 이 블로그가 그 “소유”의 일부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생각을 정리하고 공유하는 행위 자체가 — 기능이 아니라 소유 쪽에 가깝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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